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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역학(易學)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 알아듣기에는 생소한 용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용어들을 일일히 풀어가면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어느정도 역학관련 용어가 익숙해지셨을 때 읽어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통 사주팔자의 시초는 중국 당대(唐代)의 이허중(李虛中)으로 봅니다. 물론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이 나온 것은 그보다 전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오행이란 용어가 기록된 문서로서 전해지는 가장 먼 자료는 수나라 소길(蘇吉)의 오행대의(五行大義)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음양의 개념은 기원전 시대인 하(夏), 은(殷), 주(周)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황하강에 그려진 하도(河圖)와 거북이 등껍질에 그려져있던 낙서(洛書)라는 누가 그렸는지 알수 없는, 그림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점으로 이루어진 도표가 동양철학의 근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제의 그 그림들에서 시작해서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의 하나인 주나라의 주역(周易)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역이란 책은 공자가 너무 좋아하여 가죽끈이 세번 끊어질 정도로 읽었다 하여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역의 계사전(繫辭傳)도 공자가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논란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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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역학의 역사를 모르시는 분이 이해하기에는 알아듣기 힘든 설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말해서 음양오행과 상수(象數)의 개념은 기원전부터 있었지만 간지(干支)를 사용해서 운명을 예측하는 사주팔자의 근간은 당나라 시대 이허중이라는 사람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당나라는 기원후 600년에서 900년 사이의 시대입니다. 수-당-송-원-명-청 하면서 중국왕조를 외우지 않습니까? 이허중은 덕종(德宗) 시기에 벼슬에 올라 현종(憲宗)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使)의 관직에 올랐던 명리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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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송(宋)나라 초기에 서자평(徐子平)이라는 인물이 나오게 되는데, 이 사람이 현대 명리학의 근간을 세웠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근간을 세웠냐 하면, 이허중이 사주를 보는 방식은 생년을 기준으로 보았습니다. 사주라는 것이 생년, 생월, 생일, 생시로 4개의 기둥을 세워서 보는 것인데(그래서 사주四柱라고 하는 것이죠), 그 중에 생년을 기준으로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당사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서자평이 생년중심으로 풀이하던 것을 생일중심으로 풀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서자평의 이름을 따서 자평명리학이라고 칭하며, 현대까지 이 방식을 골조로 사주를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자평이 현대 명리학의 근간을 세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허중은 납음(納音)과 신살(神殺)을 많이 이용한데에 반해서 서자평은 간지의 생극제화(生剋制化)를 이용해서 운명을 예측했다는 것 또한 차이점입니다. 

 

명(明)나라때는 명리학의 보서(寶書)인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이 등장하는데, 유백온(劉伯溫)이 저자로 되어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주역의 계사전을 공자가 썼네 아니네 하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역사는 워낙 오래되어 이런 것을 밝히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역사학자들이 할 일로 미뤄두고 우리는 그냥 역사의 타임라인만 보도록 합시다. 적천수라는 책은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으로 A4용지로 뽑으면 10장 안으로 뽑을 수 있을만큼 적은 분량인데 그 의미를 해석해 놓은 것을 주해서(註解書)라고 하는데 청대의 임철초라는 사람이 해석해 놓은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라는 주해서와 서락오라는 사람이 해석해 놓은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라는 주해서가 가장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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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수와 더불어서 명대에 만민육(萬民英)의 삼명통회(三命通會), 청대(淸代)의 심효첨(沈孝隱)의 자평진전(子平眞鉛), 여춘태(余春台)의 난강망(欄江網) 등 굵직굵직한 명리학의 보서들이 있습니다. 청대면 1900년대까지 걸쳐있기 때문에 꽤나 최근이야기입니다.

 

시각을 우리나라로 돌려서 조선시대를 보면, 조선시대에 명리학자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과거시험을 쳐서 뽑았습니다. 게다가 많이 뽑지도 않았습니다. 과거시험이 3년에 한번 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번 칠때마다 2명을 뽑았습니다. 종 6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경쟁이 엄청 치열했겠죠. 시험과목으로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하여 아까 나왔던 서자평의 책도 시험과목에 있었습니다. 요즘은 사주본다고 하면 굉장히 천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조선시대에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현대로 와서 한중일(韓中日) 삼국의 명리학자들을 살펴봅시다. 먼저 중국은 위천리(韋千里)라는 명리학자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중국인인데 모택동(毛泽东) 정권을 피해 홍콩으로 망명합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위천리를 만나러 자주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은 아베 다이장(阿部泰山)이라는 사람이 가장 유명합니다. 청일전쟁때 중국에서 종군기자활동을 하면서 중국의 명리학 서적을 수집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엄청난 양의 서적을 일본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잘 하는 것이 자료 수집입니다. 음악도 정작 미국에서 못구하는 음반이 일본에 가면 있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아무튼 아베 다이장이 일본 추명학(推命學)의 대부격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제자들이 아베다이장 전집이라고 해서 26권짜리 전집을 만들었고, 그것이 일본에서 이쪽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바이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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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명리학의 빅쓰리(Big 3)라고 하면 도계(陶溪) 박재완, 자강(自彊) 이석영, 제산(霽山) 박재현 이렇게 세명을 꼽습니다. 먼저 도계 박재완 선생을 살펴보면, 평생 청렴하게 사신 것으로 유명하고, 세 명중에 가장 장수하셨습니다. 유명한 일화로는 풍표낙엽 차복전파(楓飄落葉 車覆全破)가 있는데, 김재규에게 써준 말입니다. 해석하면 낙엽이 질 때 즈음 차가 뒤집어져 박살이 난다는 말인데, 이 때문에 김재규가 그렇게 차조심을 했다고 합니다. 기사에게도 운전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고 말이죠. 하지만 이 말은 10.26때 차지철이 엎어지고(車覆) 전두환이 깨부순다(全破)는 말로 해석됩니다. 이 분의 제자이신 역문관(易門關)의 유충엽 선생 또한 유명합니다. 박재완 선생의 저서로는 명리요강(命理要綱)이 있는데, 현재 명리요강을 구입하시면 표지에 박재완선생의 얼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충엽선생의 얼굴이 있습니다. 명리요강은 위천리의 이론을 그냥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깎아 내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판단은 공부 많이 하셔서 각자 해보셔야겠죠.

 

그다음은 자강 이석영 선생입니다. 이석영 선생은 이북출신으로 아버지도 명리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석영 선생은 사주첩경(四柱捷徑)이라는 6권짜리 명저(名著)를 남기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있고, 컴퓨터 글씨 프린트가 아니라 이석영 선생의 자필을 그대로 프린트해서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보는데 조금 힘들 수 있겠습니다만, 사주지름길(첩경)이란 뜻처럼 실질적으로 사주풀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산 박재현 선생입니다. 소위 '부산 박도사'로 더 유명합니다. 물상명리학의 대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척 아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담배갑에 유신유신(維新幽神)이라고 적은 일화로 유명합니다. 박정희가 귀신이 된다는 뜻이죠. 이 분은 제자를 따로 키우시지는 않았습니다. 말년에 중풍에 걸렸는데 그때 병수발을 했던 청원 김용백 선생에게 비법을 전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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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명리학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았습니다. 보통 사주를 푸는 것을 궁금해 하시지 이런 역사글에는 별로 흥미가 없으실텐데 괜한 글을 쓴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선현(先賢)들은 모두 사망했지만 현재 살아있는 명리학자들 중에 더욱 훌륭한 인물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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